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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역사, 인문

책 리뷰) 죄의식의 표출양상

by 민크라운♡ 2021. 4. 23.

 5.18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다룬 소설들은, 그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그 이유는 후세에게 은폐된 역사의 진실성을 알려야 한다는 목적이 소설의 미학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보다 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소설의 재미를 위해 허구적인 면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역사의 진실성이 가려져 후세에게 잘 못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사실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서술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가해자나 피해자의 기억을 재생하는 일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대신 진실에 대한 우회적 접근을 통해 소설적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기억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경험들이 기억이라는 과거를 표상하는 한 양식으로 우리 삶에 누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망각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경험들을 모두 기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식 속에 존재하면서 어떤 계기가 잊힌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려 할 때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예를 들어 이순원의 <얼굴>에서 당시 군인이었던 김주호는 자신이 결혼하려고 생각했던 여자가 광주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괴로워한다. 그는 과거로부터 도망치려 하지만 되살아나는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에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대인기피 증상을 보인다. 이 소설에서 우리는 과연 누가 진정한 5.18 사건의 가해자인가 라는 것을 주목하여 살펴봐야 한다. 

 

 임철우의 <봄날>, <수의>, 박호재의 <다시 그 거리에 서면 2> 윤정모의 <밤길> 등은 1980년 오월 이후 광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5.18로 인해 혈육이나 친구를 잃은 채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네 가지 소설에는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통해 이들이 갖추어야 할 죽은 이들에 대한 예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건에는 가해자, 피해자뿐만 아니라 사건을 관찰하는 제삼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재판에서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사건을 왜곡하거나, 과장되게 진술하였는지를 '증인'이라는 객관적인 인물을 통해 파악한다. 홍세표의 <부활의 도시>, 이영옥의 <남의로 가는 헬리콥터> 등이 제삼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대표적인 소설들인데, 이러한 소설들은 관찰자라기보다는 국외자의 시선에 머무는 한계를 보인다. 

 

 그날의 비극적인 상황을 목격한 지식인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소설 역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박양호의 <늑대>에서는 10년 동안 광주에서 기자 생활을 한 '나'의 모습을 통해 5.18이라는 사건을 목격하고도 느낀 것을 글로 써내지 못한 지식인의 죄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들을 통해 우리가 절대로 잊어선 안 되는 것은 우리 역시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분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민주주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그분들의 노력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5.18 소설의 끊임없는 연구와 다양한 문학적 탐구를 통하여 인권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지켜나가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5.18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히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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